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평가/부정적 평가/사회·문화 (문단 편집) === [[선감원]] ===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60728000544_V.jpg]] [* 다만 이 사진은 박정희가 선감원을 방문한 모습을 담은 사진은 아니며, 정확히는 [[1956년]]에 경기도측 시찰단이 방문한 모습이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92|#]] 실제로 박정희는 선감원을 방문한 적은 없다.] ||[youtube(AM5U9RkZVEo)]||[youtube(7XBtFj-qphc)]|| ||[youtube(sZJm8iE4B1w)]||[youtube(yhlOlqdifBE)]|| >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선감학원이란 말뿐인 아동교화시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아무 이유없이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한 원생이 40년이 지나 초로의 중년이 돼서야 가족찾기에 나섰습니다." >"'''1960년대 말 경기도 수원에 살던 당시 8살배기 은주라는 꼬마는 차를 타고 온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습니다.''' 그가 끌려간 곳은 안산시 대부도에 있는 선감학원. 일제강점기인 1942년 설립돼 1982년까지 40년간 운영된 말뿐인 아동교화소였습니다. '''대략 6천여 명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끌려와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렸고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선감학원이라고도 한다. 선감도는 아예 '''미성년자'''들을, '''경찰이라는 작자들이 무차별로 부랑아로 단정 짓고 납치하는 등''' 인권 탄압과 수감자 선정 기준 모든 것이 [[삼청교육대]] 이상으로 답이 없었다. 다만 선감원은 [[경기도청]]이 직접 운영하던 시설이었기에 박정희 본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박정희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였고 당시에는 지방자치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던 시절이던 이상 박정희는 간접적으로나마 선감원의 인권탄압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 후부터 부랑아 단속에 관심을 기울였단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의 부랑아 인권탄압에 대한 책임은 더욱 커진다.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6422.html|#]]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선감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